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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산산조각

2016. 11. 16. 21:32

룸바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머룻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났다 
팔을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이별,주하림

2014. 2. 5. 10:27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를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 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나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사랑은 어느 쪽으로 걸어가도 깜박거렸다 깜박거릴 때마다 그 각을 재어보고 싶었지만 깜박거림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따뜻한 것이라고 빨강과 노랑 사이라고 거기 점멸하는 주황 그것들을 그냥 이해하는 거라고 그는 말했다 ‘이해’ 라는 말, 하루 종일 만지작거려도 아무 이해도 돋아나지 않았다 사랑의 대부분은 비명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불꽃이 직각으로 서있다 넘어지는지 어느 쪽으로 눕혀놔도 빨강과 노랑 사이는 가지도 오지도 말라고 깜박거릴 뿐 각이 없었다 아프고 멍한 발들이 찌르르 저려오는 곳 사랑은 이상한 눈빛과 툭툭 부러지는 이별을 가진 주황색 점멸등 뒤집어놔도 깜박거렸다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밤 나는 가장 캄캄한 순간에 오래 깜박거리던 그의 손목을 놓았다 사랑의 뒤쪽 허술한 어느 한층에 불이 나갔다 어둠을 쓰다듬어야 하는 사랑은 더 무서울 것이다 여러 번 혼절했다 깨어날 것이다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아침에도 만나고 낮에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너는 조금씩 모르게 될거야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늦은 밤에도 만나고 새벽에도 만나고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영원히 모르게 될 것이고 밤과 낮 공원과 들판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어째서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소리친다 입 닥쳐 개년아 어째서라니 네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릴수록 너는 더 미친 듯이 사랑에 목말라 해야 하고 이곳에 없는 나를 찾아 밤새도록 공원을 숲 속을 헤매게 될 거다 우리가 아침에도 낮에도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사랑은 역시 그래야 하는 걸까 나의 연인은 돌아선다 어째서 나를 개년이라고 부르는 네가 누구인지 너에게 개년이라고 불리는 내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무엇인지 너의 말처럼 영원히 모를 수도 어쩌면 조금 알게 될 수도 있을 거다 모르는 거니까 우리들 언젠가 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의 지갑을 훔쳐 과자와 홍차를 사먹은 적이 있어 이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된다면 우리를 개집에 넣고 혹독하게 매질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 밤의 나는 너의 사랑을 받는 개년이다 어쨌든 말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니 네가 누구인지 나의 첫번째 사랑이 어떻게 달아나고 마는지 똑똑히 알게 될 때까지는  

  나는 멀리로 던져졌고, 물속으로 돌멩이처럼 가라앉았다. 집나간 마음은 며칠 째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쓰러질 곳이 없었으므로 나는 종일 잠을 잤고, 또 잤고, 죽을 때까지 자고 싶었다. 마음 없는 나는 비로소 내 몸 안에 들었다. 상처난 마음자리마다 춤추며 걸어 다녔다. 핏줄을 열고 들어가 까무룩 잠들었다. 아직 따뜻하고 뭉클해. 사막 같았던 내 눈빛이 있던 자리 어디였을까. 
  
  내 곁에 마음 없이 누운 것들의 이름을 묻는다. 너는 누군데… 밥은 먹고 자는 거야? 지난밤의 이야기는 너무 슬퍼서 내 손바닥은 가시처럼 거칠어졌고, 그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울었구나? 마음도 없이 울었구나. 수치스런 사랑의 기억이 낡은 가구처럼 그립다면 넌 잘못 살고 있다는 말이야. 착하게 떠나간 사랑을 쫒아가 긴 칼을 심장에 박아 넣으면 조금 나을까. 조금씩 다친 것들의 얼굴에서 자라는 동굴 같은 방. 
  
  재워주고 싶어. 
  
  너도 혼자 있고 싶은 게로구나. 이제 그만 저 구석의 마음이나 데리고 나를 떠나고 싶은 거로구나. 가엾은 것들, 그래서 자꾸만 낯선 여행자의 얼굴로 돌아보는 거니? 네가 떠날 동안 나는 지리멸렬한 구름에나 대고 욕을 내뱉겠지. 잘 말린 눈물이 다시 싹틀 때까지. 불안한 여름을 긁어대겠지. 오늘 새로 지구로 떨어진 먼지처럼 낯설게 울어봐야겠지. 백합을 들고 사라진 그 여름밤을 기억하라고 속절없이 무너지던 밤을 울어야겠지.